재개발·재건축 조합이 휘청이는 가장 흔한 원인은 시공사가 아니다. 조합 운영 그 자체다. 용역계약 한 건이 잘못 묶이고, 예산·회계가 불투명해지고, 정보공개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사업은 첫 삽을 뜨기도 전에 분쟁의 늪에 빠진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이 문제를 다뤄온 방식은 단순했다. 문제가 터진 뒤 들여다보는 '실태점검'이다. 적발하고, 고발하고, 시정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이 방식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비리는 잡되, 사업은 멈춘다는 점이다.
2026년 6월, 한국부동산원이 이 구조를 정면으로 바꾸겠다고 나섰다. 핵심은 '사후 적발'에서 '사전 예방'으로의 전환이다. 부동산원은 6월 26일부터 전국 조합을 상대로 컨설팅 신청 접수를 시작했고, 6월 29일 대구광역시에서 시범운영에 들어간다. 7월부터는 전국으로 정식 확대한다. 오늘 부동산 시장에서 이 소식이 최대 이슈로 떠오른 이유는 분명하다. 정비사업의 행정 관리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왜 '사후 적발'이 한계에 부딪혔나
지금까지 조합 운영에 대한 관리·감독은 지방자치단체의 실태점검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회계 장부와 계약 서류를 사후에 들여다보고 위법이 확인되면 행정처분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투명성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었지만, 부작용도 명확했다. 점검 결과 고발이나 시정명령이 떨어지면 그 자체로 사업이 지연된다. 조합원 수백 명이 발이 묶이고, 금융비용은 시간만큼 불어난다. 비리를 잡으려다 정작 멀쩡한 조합원이 손해를 보는 역설이 반복돼 온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타이밍이다. 조합 초기에 생긴 작은 실수와 관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중에는 되돌리기 어려운 분쟁으로 번진다. 일단 소송이나 진정이 제기되면 행정청의 판단을 기다리는 동안 사업은 사실상 정지한다. 그렇다면 문제가 곪기 전에, 첫 단추를 끼우는 단계에서 전문가가 개입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다. 이번 정비사업 컨설팅이 겨냥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사고를 막는 비용이 사고를 수습하는 비용보다 언제나 싸다는, 위기관리의 기본 원칙을 행정에 적용한 셈이다.
무엇을, 누구에게 지원하나
이번 정비사업 컨설팅의 대상은 명확히 초기 조합에 집중돼 있다. 설립 2년 이내의 재개발·재건축 조합, 그리고 시공자 선정 이전 단계의 조합이 우선이다. 필요하면 그 밖의 조합도 신청할 수 있다. 사업이 본격화되기 전, 운영 체계를 잡는 시기에 손을 대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시공사가 정해지고 나면 이미 수많은 계약과 이해관계가 얽혀 손을 대기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초기 단계를 정조준한 설계는 타당하다.
지원 범위는 조합 운영의 핵심 뼈대를 모두 포괄한다. 용역계약, 조합행정, 예산·회계, 정보공개 등 운영 전반이다. 하나같이 분쟁의 씨앗이 가장 많이 묻혀 있는 영역들이다. 실제 정비사업 현장에서 터지는 갈등의 상당수는 거창한 비리가 아니라, 계약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거나 회계 처리가 미숙했거나 정보를 늦게 공개한 데서 비롯된다. 방식도 책상 위 자문에 그치지 않는다. 부동산원과 지자체,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가가 직접 현장을 방문해 맞춤형 자문을 제공한다. 부동산원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26년 5월 전국에 걸쳐 79명의 자문위원을 위촉했고, 대한변호사협회·한국공인회계사회와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인력과 전문성을 갖춰놓고 시작하는 셈이다.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시범운영지가 대구인 데에는 배경이 있다. 부동산원은 2024년 3월 대구광역시와 '정비사업 지원 업무협약'을 맺었고, 이 협약을 토대로 시범사업을 운영하며 제도를 다듬을 계획이다. 대구에서 검증한 결과를 반영해 보완한 뒤 7월부터 전국 단위로 정식 시행에 들어간다. 한 번에 전국에 풀지 않고 한 곳에서 실효성을 점검한 뒤 확대하는, 비교적 신중한 접근이다. 이런 단계적 확대는 제도 초기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한편, 지역별로 다른 조합 운영의 실정을 데이터로 축적할 기회이기도 하다.

김남성 부동산원 본부장은 "조합 운영은 정비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며 운영 투명성 향상을 강조했다. 이 발언은 이번 정책의 방향을 압축한다. 정비사업의 실패는 대개 거창한 외부 변수가 아니라 내부 운영의 허술함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이다. 시장이 좋아도 조합이 무너지면 사업은 좌초하고, 시장이 어려워도 운영이 탄탄한 조합은 살아남는다.
투자자·조합원이 읽어야 할 함의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컨설팅이 곧 사업 속도를 보장한다는 기대다. 정비사업 컨설팅은 비리와 분쟁의 발생 확률을 낮추는 예방 장치이지, 인허가나 분담금 협상 같은 사업의 본질적 변수를 해결해 주는 도구가 아니다. 조합 운영이 깨끗해진다고 해서 사업성 자체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컨설팅은 어디까지나 자문이며, 최종 의사결정과 그 책임은 여전히 조합과 조합원의 몫이다.
그럼에도 이 변화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조합 운영 리스크가 줄어든다는 것은 곧 사업 지연 가능성과 그에 따른 비용 변동성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정비사업 구역을 들여다보는 실수요자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해당 조합이 정비사업 컨설팅을 받았는지, 초기 운영이 얼마나 체계적인지가 사업장의 안정성을 가늠하는 새로운 점검 항목이 될 수 있다. 화려한 입지 조건만큼이나 '운영의 투명성'이 사업 성패를 가른다는 사실을, 10년간 시장을 지켜본 입장에서 거듭 강조하고 싶다. 단지 가격과 입지만 보던 시선에서, 그 사업을 누가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함께 보는 시선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조치는 단순한 행정 서비스 추가가 아니다. 적발과 처벌이라는 사후 통제에서, 예방과 자문이라는 사전 관리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구조적 전환이다. 잘 설계된 정비사업 컨설팅이 제도로 자리 잡는다면 분쟁으로 멈춰 서는 사업장은 줄고, 조합원의 불필요한 손실도 줄어들 것이다. 다만 시범운영의 성과와 전국 확대 과정의 실효성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자문의 강제성이 없는 만큼 조합의 참여 의지를 어떻게 끌어낼지도 관건이다. 방향은 옳다. 이제 남은 것은 현장에서의 실행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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